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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자의 동행]세상과 단절된 할머니 지키는 개들…그들은 행복할까
[최기자의 동행]세상과 단절된 할머니 지키는 개들…그들은 행복할까
  • (여주=뉴스1) 최서윤 기자
  • 승인 2021.05.17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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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여주시 개 30여마리와 사는 견주 도움 필요
[편집자주]반려동물 양육인구 1000만 명 시대. 전국 각지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반려동물 관련 행사가 열립니다. 꼭 가보고 싶은 행사인데 가기 힘든 상황이 돼서 놓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런 행사들을 '최기자'가 대신 가서 생생하게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또 동물 구조 현장이나 보호소 봉사활동 등 '생명'과 관련된 현장은 어디라도 달려가겠습니다. 그리고 사람과 동물이 동행하는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낯선 사람을 심하게 경계한 개들은 A씨를 보고 금방 조용해졌다. © 뉴스1 최서윤 기자

(여주=뉴스1) 최서윤 기자 = "컹~ 컹!"

수십 마리의 개들이 일제히 목이 터져라 짖어댔다. 낯선 사람을 본 개들은 짖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어떤 개들은 등 뒤로 와서 계속 경계하는 분위기였다.

지난 2일 경기도수의사회(회장 이성식), 동물권행동 카라(대표 전진경) 관계자들과 함께 경기 여주시의 한 민가를 방문했다. 이곳에 있는 30여 마리 개들의 수의료 봉사를 위해서였다.

여주시에서도 차를 타고 한참 들어간 이곳은 이웃과 멀리 떨어진 외딴집이었다.

경기 여주시에 사는 A씨의 집에는 오래된 사료와 용품이 쌓여 있었다. © 뉴스1 최서윤 기자

◇ 오래된 사료·용품 방치…청소도 안 돼 위생 엉망

입구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한쪽 구석에 쌓여 있는 사료와 용품, 개들의 배설물이었다. 내용물을 뜯지 않은 샴푸도 보였다. 관리 안 된 사설 동물보호소 분위기였다.

조금 더 안으로 들어갔다. 한쪽 구석에는 피아노 건반부터 시작해 잡동사니와 쓰레기들이 쌓여 있었다. 몇 년은 정리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쓰레기더미 옆으로는 2~3마리의 개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개들은 낯선 사람을 경계했다. 야외 울타리 안에는 10마리가 넘는 개들이 우렁차게 짖어댔다. 흙바닥 군데군데 개들이 파놓은 구멍도 보였다.

건물 안에도 10여 마리의 개들이 있었다. 이 중에는 사람이 무서워 꼬리를 내리며 벌벌 떠는 개도 보였다. 어떤 개들은 구석에 숨어 얼굴이 보이지도 않고 미동도 하지 않아 죽은 것으로 오해할 정도였다.

건물 안의 상태는 더욱 심각했다. 언제 청소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먼지가 많았다. 악취도 심했다. 마스크 사이로 냄새가 스며들었다.

하지만 수의사들과 활동가들은 개의치 않았다. 이들에게는 악취보다 개들의 건강이 우선이었다. 활동가들은 건물 안에서 수의사가 중성화 수술을 위한 마취를 할 때 개들을 붙잡아줬다. 개들을 달래가면서 안심시켜주기도 했다.

경기 여주시에 봉사하러 온 낯선 사람들을 경계한 개들. 가구 뒤에 숨거나 A씨 뒤에 숨었다. © 뉴스1 최서윤 기자


김동근 수의사(오른쪽)와 카라 활동가가 개들의 중성화 수술 봉사를 진행하고 있다. © 뉴스1 최서윤 기자

김동근 수의사는 개들을 실내에서 마취한 뒤 야외에서 수술을 진행했다. 수술을 진행하는 동안 대부분 개들의 몸에서 진드기가 발견됐다. 그는 "진드기는 자칫 강아지들의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다. 손으로 떼면 안 되고 핀셋 등을 이용해 제거하는 것이 안전하다"며 개들의 몸에 붙은 진드기를 떼어냈다. 이어 정지혁 수의사는 개들에게 예방접종을 했다.

건국대학교 수의대 동아리 바이오필리아에서 활동 중인 윤소윤·김혜린·김성문 학생들은 수의사들을 보조하며 개들을 보살폈다. 이들은 "봉사를 하면서 개들을 사랑하는 마음과 윤리 의식도 커진다"며 밝게 웃었다.

이날 중성화 수술을 한 개들은 10여 마리. 지난해에도 다른 수의사들이 이곳을 찾아 봉사를 진행했다. 당시 너무 어리거나 출산을 앞둔 개들은 중성화를 할 수 없는 관계로 올해 또 진행하게 됐다는 후문이다.

모든 개체가 다 중성화되지 않은 상황이라면 개들의 암수 분리라도 잘 돼야 한다. 하지만 관리가 잘 되지 않으면 새끼들이 또 태어나고 열악한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기 일쑤다.

이런 악순환을 조금이라도 막기 위해 수의사들은 중성화 봉사를 한다. 지난해 미처 중성화가 안 된 개들 중에 또 임신이 된 개도 있었다. 중성화를 하려던 한병진 수의사는 개의 배를 만져보고 곧 출산이 임박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곳에서 새끼를 낳으면 또 다시 개체수가 늘어나고 건강관리가 안 된다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결국 그는 임신견을 자신이 데려가 새끼들까지 입양 보내기로 했다.

경기도수의사회는 2일 경기 여주시에서 수의료 봉사를 했다. © 뉴스1 최서윤 기자


경기도수의사회는 2일 경기 여주시에서 수의료 봉사를 했다. © 뉴스1 최서윤 기자

◇ "애니멀호더 비난만 할 순 없어…복지 혜택 받도록 도와야"

이쯤 되니 A씨의 얘기가 듣고 싶었다. 관리도 하기 힘든 이 많은 개들을 왜 이렇게 데리고 있는지도 궁금했다. 일부 사설 보호소 운영자는 '보호'를 가장한 '애니멀 호더'(동물을 병적으로 수집하는 사람)로 불린다. 후원을 받기 위한 업으로 삼는 사람도 있는 탓에 A씨도 그런 사람이 아닐까 하는 의혹도 생겼다.

그런데 막상 A씨를 만나니 도와주고 싶다는 마음이 커졌다. 사설 보호소 근무자 중에는 봉사자들을 보고 고마워하기보다 개들에게 문제 생길까봐 경계의 눈초리로 보는 이들도 꽤 있다. 하지만 A씨는 달랐다. 옆에서 조용히 지켜봤다. 참견하지도 않고 사람들에게도 살짝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A씨는 1947년생 올해 75세라고 했다. 한국 배우 최초로 아카데미 배우상을 수상한 배우 윤여정씨와 인기 유튜버 박막례 할머니와 동년배다. 그의 체구는 아담했다. 말투는 조근조근했다. 기품 있어 보이는 말투와 달리 옷은 언제 갈아입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해져 있었다.

방 한쪽 구석에서 A씨의 옛날 사진이 눈에 띄었다. 사진 속 그는 학교 교정에서 사람들과 다정한 모습으로 웃고 있었다. 사진 이야기를 하며 A씨에게 말을 걸었다. 그는 원래 서울에서 살다가 10년 전쯤 이곳으로 개들과 정착하게 됐다고 했다. 자세한 속내를 털어놓지는 않았지만 아이들을 가르친 전력이 있다고 했다. 서울에서 살다 이곳으로 거주지를 옮긴 후 개들에게 의지해 생활하는 듯 했다.

조용하게 말하는 A씨의 치아 상태도 걱정스러워 보였다. 개들도 걱정이지만 그의 건강 상태가 더 우려됐다. 개들을 입양 보내고 A씨 또한 여생을 편하게 보내는 것이 필요해보였다.

하지만 A씨는 개들을 다른 곳에 보낼 생각은 없다고 했다. 그는 "힘들어도 개들을 입양 보낼 수는 없다. 키울 사람이 없기 때문"이라며 "나도 그렇고 개들도 살 수 있는 나이가 있으니 10년 정도만 더 데리고 있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개 30여 마리와 사는 A씨 집 앞에 쓰레기가 쌓여 있다. © 뉴스1 최서윤 기자

A씨의 말은 이해가 됐다. 작고 어린 강아지들은 입양이 쉽다. 하지만 덩치도 크고 사회화가 잘 안 돼 있는 개들은 입양이 쉽지 않다. 많은 사람들은 함께 걱정해준다. 하지만 여러 여건상 입양까지 이어지는 일이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자신도 돌보지 못하고 있는 A씨가 이 많은 개들을 돌보고 있는 것을 마냥 "좋은 일 한다"며 칭찬할 수는 없었다. 반대로 "애니멀 호더"라고 손가락질만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수의사와 활동가들을 경계하던 이곳의 개들은 A씨가 다가가자 꼬리를 흔들며 반겼다. 개들의 행동을 보니 다른 사람에게 입양 보내는 것은 안 될 일이었다. 개들의 입장에서도 A씨와 사는 것이 행복할 수도 있어 보였다. 여기서 필요한 건 A씨에 대한 전문가의 위로와 치유인 듯 했다.

봉사가 끝나고 지자체에 A씨의 상황을 알렸다. 지자체 담당자는 아직 A씨에 대해 들은 바는 없고 확인해보겠다고 했다. 이런 외진 곳의 상황은 공무원들이 알기 힘드니 누군가 이렇게 알려주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사설 보호소 봉사를 자주 다닌다는 한 관계자는 "사설 보호소에 가보면 개들도 문제지만 사람 자체가 복지 혜택을 못 받는 경우가 많다"며 "사람을 위로해주고 개들의 숫자가 더 이상 늘어나지 않도록 하는 개체수 정책을 고민해야 할 때"라고 조언했다.

경기 여주시에서 A씨가 키우고 있는 개들. © 뉴스1 최서윤 기자

[해피펫] 사람과 동물의 행복한 동행 '뉴스1 해피펫'에서는 짧은 목줄에 묶여 관리를 잘 받지 못하거나 방치돼 주인 없이 돌아다니는 일명 '마당개'들의 인도적 개체수 조절을 위한 '시골개, 떠돌이개 중성화 캠페인'을 진행 중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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