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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주에 사과한 할머니'…월 27만원 일자리 잃을까 '감정노동' 고통
'견주에 사과한 할머니'…월 27만원 일자리 잃을까 '감정노동' 고통
  • (양주=뉴스1) 이상휼 기자
  • 승인 2021.06.06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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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 후 '우리 어머니 당하지 않았을까' 자녀들 안부전화 잇따라

(양주=뉴스1) 이상휼 기자 =

양주시청의 공원환경지킴이 업무를 맡은 할머니가 산책을 나온 견주와 언쟁을 한 사건이 논란인 가운데, '조장 할머니'가 대리사과에 나설 수 밖에 없었던 배경엔 '갑을 피라미드' 구조가 있었다.

시청과 노인일자리사업 수탁기관 사이의 '갑을 관계'가 바탕에 깔려 있었고, 그 최하층에는 월 27만원의 임금을 받기 위해 민원인에게 '감정노동'까지 해야하는 70~80대 어르신들의 고단한 삶이 있었다.

6일 언쟁의 당사자인 견주와 환경지킴이로 일하는 복수의 어르신들에 따르면 견주는 동주민센터, 시청, 경찰서, 농림축산식품부 등에 전화해 '우리나라에 개들을 벤치에 앉히지 말라는 법'이 있는지를 확인했다.

언쟁이 있던 당시 환경지킴이 할머니는 벤치에 흙이 묻었으니 닦아 달라고 요구했고, 견주는 할머니에게 '그런 법이 어딨느냐'고 따졌다. 할머니는 '우리나라법'이라고 대꾸했고 견주의 거센 항의가 이어졌다.

견주는 뉴스1과의 수차례 통화에서 "동주민센터에 전화했더니 '법' 관련해서는 경찰서에 문의하라고 안내했다. 그래서 경찰서에 전화했더니 '민원 넣으라'고 안내했다"고 밝혔다.

민원을 제기한 것은 공공기관의 안내에 따른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견주는 "전화 받은 주무관의 응대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양주시는 공식 입장문을 통해 "담당부서는 원만한 해결을 위해 위탁기관에 민원 내용을 전달한 사실은 있다"고 밝혔다.

시의 이런 입장을 들은 노인회 관계자는 "수탁기관은 '노인일자리사업'을 맡기는 예산배정기관인 시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으며, 일종의 '암묵적 압박'이 작용하는 구조"라고 꼬집었다. 노인회는 노인일자리사업을 맡는 수탁기관 중 하나다.

◇ '갑-을 피라미드' 민원인→시청→수탁기관→그리고 노인들


한달 27만원의 공익형 노인일자리사업에 참여하는 어르신들, 어르신들에게 업무를 맡긴 수탁기관, 예산을 주고 보조기관에 위탁하는 양주시, 유권자인 민원인. 마치 피라미드 구조처럼 얽힌 이 관계의 맨 아래에는 노인들이 위치한다.

우리사회 가장 약자인 할머니들이 이번 '견주에 사과한 할머니' 사건의 피해자다.

시는 올해 노인일자리와 사회활동 지원사업에 66억원 투입한다고 밝힌 바 있다.

시의 노인 인구는 약 3만4000명으로, 이중 50.9%는 100만원 미만의 소득으로 생활한다. 노인 인구가 증가한 만큼 일자리 찾기도 쉽지 않다는 통계다.

할머니들은 '뉴스 보도 이후 자녀들로부터 안부전화를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혹시 우리 어머니가 당하지는 않았을까' 노심초사하는 마음에 자녀들의 안부전화가 잇따랐다는 것이다.

민원인과 언쟁한 할머니를 대신해 견주에게 '대리 사과'했다는 조장 할머니는 "우리는 약자다. 아무리 우리가 잘 해도 이 일(공익형 노인일자리)을 하니까 약자가 되는 거다. 견주와의 문제에서 우리의 잘못은 없지만, 견주가 하도 신고를 하니까 사과했다"고 털어놨다.

지난 4일 오전 경기 양주시 옥정호수공원에서 만난 노인일자리 사업 참여 환경지킴이 어르신들. 이중 조장 할머니가 지난달 31일 견주를 만나 사과했다고 밝혔다. © 뉴스1


◇ '민원 무마' 위한 '대리 사과'…'논란 더 키워'


논란의 당사자인 견주는 뉴스1과의 통화에서 "시에는 '혼자 있는 견주한테 막말하지 말게끔 해달라고 요청했다. '여자 견주 상처주지 마세요' 단지 그 말을 하고 싶었다"고 강조했으며, "사과 받는 날도 그 장소에서 50여분이나 기다렸다"고 덧붙였다.

견주가 기다렸다는 그 50여분간 '사과 문제'로 할머니들과 수탁기관 관계자들간의 이야기가 오갔을 것으로 보인다.

견주에게 벤치 청소를 요청했던 할머니가 '사과할 행동과 말을 한 적이 없다'며 사과를 거부하자, 조장 할머니가 대신 사과에 나섰다.

당시 견주도 '대리 사과'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사과를 받았다. 견주는 뉴스1과 통화에서 대리사과에 대해 '그건 사실이 아니다. 나랑 시비했던 할머니가 맞다"고 주장했다가 차후 통화에서 "(대리 사과에) 기만 당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할머니에 대해서는 "막말 가해자다"고 주장하며 "양주시청에서는 공원에서 일하는 그 노인들에 대해 오히려 '꿀직'이라고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또한 자신의 시바견(5세 수컷)은 항상 경계태세를 유지하고 있으며, 아키타견(3세 수컷)은 '가드견'으로 훈련이 잘 돼 있다고 부연했다.

조장 할머니와 '사과 문제'로 만났을 당시에 대해 견주는 "아이들(개들)이 나와 불편한 관계에 있던 할머니가 온 것을 알아채고 '3번' 짖었다"면서 "항상 시비가 있었던 사람을 아이들이 먼저 알아봤다"고 사과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양주시는 이와 관련 입장자료를 내고 "해당 어르신이 견주를 만나 사과한 사실은 없다. 법에 따라 대응하겠다"고 주장했다. 견주의 민원으로 비롯된 사과 자체가 없었던 일인 것처럼 전후 사정을 빼놓은 채 사실을 오도하는 입장문을 낸 것이다.

취재진이 만난 공원환경지킴이 어르신들은 "개 임자(견주)가 할머니의 요청대로 벤치를 닦고 '미안하다'고 사과하면 될 일이었다. 할머니가 사과 받아야 하는 일이다. 오히려 우리가 사과했다"면서 울분을 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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