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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관의 세계인문여행] 개와 인간, 3만4000년간 이어진 우정
[조성관의 세계인문여행] 개와 인간, 3만4000년간 이어진 우정
  • (서울=뉴스1) 조성관 작가
  • 승인 2021.08.26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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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디언 골든 리트리버 / 사진출처 = 위키피디아

(서울=뉴스1) 조성관 작가 = 정신과 의사들은 반려견이 죽는 펫 로스(pet loss)가 배우자를 잃는 충격 못지않다고 진단한다. 반려견과 이별한 사람들은 대개 두 가지 반응을 보인다.

하나는 극도의 상실감에 다시는 개를 키우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경우다. 주변에도 절대 개를 키우지 말라고 신신당부한다. 동물은 집안에 들이는 순간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한다, 정이 든 동물과 헤어져야 하는 게 너무 고통스럽다.

다른 하나는 다시는 반려견을 키우지 않겠다고 결심했다가 슬픔을 잊으려 다른 개를 입양해 사랑을 쏟는 경우다. '사랑이 다른 사랑으로 잊혀지네'라는 하림의 노래처럼 '펫 로스'는 '펫 게인'(pet gain)으로만 치유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고고학적 연구에 따르면 인간이 개를 길들인 기간은 3만4000년이 넘는다. 개 다음으로 '인간의 친구' 자리를 차지한 고양이를 인간이 길들인 것은 9500년 전이다.

인류가 불을 사용하며 혈거(穴居) 생활을 할 때 일단의 늑대 무리가 인간 주변을 맴돈다. 그 늑대들 중 일부가 인간이 던져준 먹다 남은 음식물을 먹게 되면서 인간과 동물이라는 서로 다른 우주의 위대한 만남이 시작된다. 인간이 먹는 탄수화물을 소화시키는 위(胃)를 가진 늑대는 생물학적으로 공존에 유리했다. 공존은 확실히 모두에게 이득이었다.

개는 수렵 생활의 확실한 도우미였다. 개는 인간의 생존에 기여하는 대가로 먹이와 따뜻한 잠자리를 안정적으로 보장받았다. 이것은 야생으로 있는 것보다 종족 번식에 결정적으로 유리했다.

장구한 세월 개의 용도는 철저하게 '일하는 개'였다. 소와 말이 귀하던 중세 시대에 개들은 집안에서 소와 말을 대신했다. 가내 수공업에서 힘을 쓰는 온갖 역할을 개들이 도맡았다. 그러다 개가 죽으면 인간은 개고기를 먹었다. 19세기까지 모든 문명권에서 개고기 식용은 일반화되었다. 19세기 이후 기계문명의 발달은 개들이 '밥값'을 할 공간을 없애 버렸다.

개가 노동력을 제공하는 일개에서 애완(愛玩)의 대상으로 신분이 상승되면서 인간은 작고 사랑스러운 견종을 선호하게 되었다. 수많은 세월, 믹스(혼합)에 믹스를 더해 다양한 견종이 탄생했다. 인간은 기호에 따라 다양한 견종을 원했다. 더 작고, 더 귀엽고, 더 순하고···.

그런 가운데서도 특수 목적용 개들은 여전히 자기 위치를 지켜냈다. 양치기개, 사냥개, 사역견이다. 양치기개의 대명사는 보더 콜리. 오죽하면 뉴질랜드의 양모 산업은 보더 콜리가 없었으면 불가능했다는 말이 나왔을까. 사냥꾼은 사냥개 없이는 사냥을 나가지 못한다. 저먼 포인터와 잉글리시 포인터가 사냥개의 명성을 유지하는 중이다. 경찰견, 군용견, 수색견은 사역견으로 분류된다.

개의 수명은 대체로 체구에 반비례한다. 경찰견과 군용견으로 사용되는 저먼 셰퍼드 같은 덩치가 큰 견종은 영특하지만 신진대사가 빨라 수명이 10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들은 개로부터 심리적 안정감을 얻는다고 말한다. 산모가 수유할 때 애착감을 느끼는 것은 젖을 물릴 때 옥시토신(Oxytocin) 호르몬이 분비되기 때문이다. 인간과 개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개를 껴안거나 개가 혓바닥으로 얼굴을 핥아줄 때 인체는 옥시토신 호르몬을 분비한다.

개의 후각세포는 인간보다 500만개나 더 많다고 한다. 특별한 후각능력을 가진 개가 인간의 목숨을 구했거나 우정을 나눈 사례는 일일이 다 헤아릴 수도 없다. 실종자를 찾는 데 동원되는 수색견은 블러드하운드(blood-hound). 실종자의 옷 냄새만 맡고도 산속에 암매장된 시신을 찾아내는 게 블러드하운드다. 우리는 시각장애인들이 안내견의 도움을 받으며 거리를 걷는 것을 종종 본다. 삼성화재안내견학교에서 교육을 받은 래브라도 리트리버다.


바넷사 벨이 그린 글을 쓰는 레너드 울프와 샐리 / 자료출처 = The National Trust

버지니아 울프가 사랑한 코카 스패니얼 '샐리'

영국의 소설가 겸 에세이스트 버지니아 울프(1882~1941)는 남편 레너드 울프와 코커 스패니얼(cocker spaniel)을 키웠다. 영국이 원산지인 코커 스패니얼은 도요새(woodcock)를 잡는 사냥개였다. 그래서 '코커'라는 이름을 얻었다. 버지니아는 1920년대 들어 인세와 강연 수입만으로 비로소 생계에서 해방되었다. 경제적 여유가 생기자 런던에서 남동쪽으로 기차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이스트 서섹스' 지방의 로드멜에 땅을 사서 집을 지었다. 몽크스(Monk's) 하우스. 부부는 주변 땅을 사들여 커다란 정원과 농장을 만들었다.

부부는 런던에 살면서 한 달에 절반 정도는 로드멜로 내려와 시간을 보내곤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런던에 머무는 시간보다는 점점 로드멜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뛰어난 작품을 남긴 이 세상 모든 작가와 예술가들은 자기만의 규칙적인 습관이 있다. 버지니아는 몽크스 하우스 2층 집필실에서 이른 아침부터 오전 시간 내내 글을 썼다. 레너드 조차도 버지니아의 아침 시간을 방해하지 못했다. 어떤 손님이라도 1층 응접실에서 버지니아가 점심을 먹으러 내려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점심을 먹고 나면 누구나 식곤증을 겪는다. 정신노동을 하는 사람이라면 두뇌 회전이 늘어난 테이프처럼 급격히 느려진다. 버지니아는 점심을 먹고 나면 날씨와 상관없이 언제든 2~3시간씩 우즈 강가와 그 주변을 산책했다. 집에서 우즈강까지는 1㎞ 정도. 그 산책길의 동반자가 코커 스패니얼 샐리(Sally)였다.


버지니아 울프가 오후에 샐리와 함께 산책을 가곤 하던 우즈강으로 향하는 길. 조성관 작가 제공


버지니아가 애지중지한 샐리였지만 주인의 2층 집필실은 감히 올라갈 수가 없었다. 그럴 때마다 샐리는 언제나 정원 손질을 하는 레너드를 따라다니거나 1층 책상에 앉은 레너드 옆에서 턱을 앞발에 괴고 얕은 잠을 자며 코를 곯았다. 레너드는 1층 거실의 작은 책상에서 연재물 원고를 쓰거나 편지를 쓰곤 했다.

버지니아의 언니 바네사 벨(1879~1961)은 당대의 화가였다. 바네사 역시 자주 로드멜을 찾곤 했는데, 언니 부부의 애견 샐리를 두 번 화폭에 담았다. 글을 쓰는 레너드 옆에서 한가롭게 엎드려 있는 샐리를 그리기도 했고, 샐리를 단독 모델로 그린 적도 있다. 코커 스패니얼 샐리는 주인을 잘 만난 덕에 순간에서 영원으로 승천했다.

프로이트 진료실의 도우미 차우차우 '조피'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1856~1939). 프로이트의 여러 흑백 사진들 중에는 빈의 진료실에서 반려견과 있는 사진 한 장이 보인다. 중국에서 유래한 차우차우종 '조피'다. 프로이트에게 충실한 반려견 조피.

이미 오래전 프로이트 연구자들은 이 조피의 역할에 대한 연구를 끝냈다. 정신과 의사 프로이트는 상담실에 언제나 조피를 머물게 했다. 환자와 상담을 진행할 때 조피가 프로이트 옆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상담에 도움을 준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무심한 듯 조용히 엎드려 있는 조피의 모습을 보면서 환자들은 불안감을 떨쳐버리고 내밀한 이야기를 하나씩 끄집어냈다.

인간 무의식을 발견한 프로이트는 동물 매개치료의 발전에도 기여한 사람으로 평가된다. 프로이트 진료실의 반려견 조피. 이를 모티브로 삼아 미국 소아정신과 의사 보리스 레빈슨은 현대의학의 관점에서 동물매개치료법을 정립한다. 여기서 심리치료견이 등장한다. 실제로 자폐아 치료에도 심리치료견이 이용된다.

서재에서 프로이트 곁을 지키는 차우차우종 조피 / 사진출처 = 위키피디아


프로이트가 조피를 얼마나 끔찍이 아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 1938년 3월, 나치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병합했다. 직후부터 프로이트는 나치로부터 지속적인 괴롭힘을 당한다. 견디다 못해 프로이트는 망명을 결심하고 나치에 돈을 바치고 비자를 발급받는다. 프로이트는 파리를 거쳐 런던으로 망명하면서도 조피를 데려갔다.

조피는 망명지 런던 햄스테드의 임시 거처에서도 언제나 주인 곁을 지켰다. 이 연재물에서 여러 차례 언급한 바 있지만 프로이트는 구강암 수술을 33번이나 받는 고통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정신을 혼미하게 만드는 진통제를 결코 복용하지 않았다.

구강에서 괴사(壞死)가 진행되면서 악취를 내뿜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딸 안나와 비서는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고 프로이트의 병상을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조피가 프로이트 곁으로 오지 않았다. 한시도 곁을 떠나지 않았던 충직한 조피 아니었던가. 주인의 몸에서 나는 역한 냄새에 대해 조피는 정직하게 반응한 것이다. 프로이트는 조피의 '이상 행동'을 보고 죽음의 시간을 정확히 가늠했다.

타샤와 코기 / 사진출처 = 튜더의 정원


타샤 튜더의 코기 13마리

세계적인 동화책 작가이자 삽화가인 타샤 튜더(1915~2008). 아흔세 살까지 산 타샤 튜더는 코기를 끔찍이 사랑했다. 집안에서 대대로 키워온 종이 웰시 코기다. 코기견은 원래 영국 웨일스 지방에서 소를 몰던 쉽독(Sheepdog)이었다. 코기견은 타샤의 상징동물이다. 물론 농장에 앵무새도 10여마리 키웠지만. 타샤는 "코기에 비견할 만한 개는 없다. 코기는 예쁨 덩어리다"라고 말했다.

타샤는 버몬트 집에 살면서 코기를 13마리까지 키운 적도 있다. 첫 번째 장편동화이자 대표작이 '코기빌 마을 축제'(Corgiville Fair)다. 코기빌 마을은 코기들만 사는 가상 공간을 설정해 이야기가 전개된다. 동물들과 살고 싶다는 어릴 적 꿈이 이 동화에서 실현되었다. 이 동화책으로 타샤는 동화작가로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 '코기빌 마을 납치대소동'(The Great Corgiville Kidnapping)도 있다. 타샤가 삽화를 그린 동화책 '코기빌 크리스마스'가 2003년에 나왔다. 타샤를 다룬 책이나 동영상을 보면 타샤는 정원에 혼자 있는 순간이 없다. 타샤가 가는 곳이라면 바늘의 실처럼 코기들이 졸졸 따라다닌다.

코기 없는 타샤의 정원을 상상할 수 있을까. 타샤의 정원이 곧 코기빌 마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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