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7 22:48 (토)
215명과 300마리의 '공존'…가파도는 어떻게 '길고양이 낙원' 됐을까
215명과 300마리의 '공존'…가파도는 어떻게 '길고양이 낙원' 됐을까
  • (제주=뉴스1) 오현지 기자
  • 승인 2022.01.31 07: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머리 맞댄 활동가·행정…급식소부터 중성화 사업까지
봉사자 뱃삯 안 받는 선사 등 도움의 손길 이어져
가파도 길고양이. 2022.1.31/뉴스1© News1

(제주=뉴스1) 오현지 기자 = "고양이 하나가 뭘 잘못 삼켰는지 며칠째 밥도 못 먹고 걱정돼 죽겠어."

지난 15일 서귀포시 동물보호명예감시원 김지은씨와 봉사자들이 가파도에 도착하자마자 한 마을주민이 부리나케 달려와 우려섞인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얼핏 들으면 가정집에 사는 반려묘를 걱정하는 말 같지만, 가파도의 푸른 청보리밭을 마당으로 삼은 길고양이 얘기였다.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았던 가파도 길고양이는 어떻게 주민들의 삶 속에 스며들게 됐을까.

◇ 눈엣가시에서 이웃으로…급식소가 일으킨 변화


가파도에 설치된 길고양이 급식소. 2022.1.31/뉴스1© News1

제주도에서 배로 10분 거리에 있는 가파도를 한 바퀴 걷다보면 돌담 위에서도, 청보리밭에서도 고양이를 쉽게 만날 수 있다. 노란 호랑이 무늬를 한 '치즈냥'이 대부분이다.

가파도에 어느 순간 나타난 길고양이는 폭발적인 번식력으로 순식간에 세를 늘려갔다. 현재 추정되는 고양이 수만 300여 마리에 이른다.

215명이 사는 섬에 고양이만 300마리.

먹을 걸 찾으러 집에 들어가 창고를 뒤지고, 널어놨던 생선을 파헤치기 일쑤니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 게 당연했다. 주민들에겐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었다.

민원이 끊이지 않자 지난해부터 동물 보호 활동가들과 행정이 머리를 맞댔다.

번식력이 왕성한 고양이들의 개체 수 조절을 위한 중성화 사업이 시급하다는 판단이 나왔다. 중성화 수술 전 체력보충을 위한 규칙적인 사료 보급이 우선이었다.

그래서 만들어진 길고양이 급식소가 변화의 시작점이었다. 가파도 곳곳에 자리잡기 시작한 급식소는 현재 19개로 늘었다.

급식소 옆에는 사료통을 둬 주민들이나 관광객들이 지나다니며 먹이를 챙겨줄 수 있도록 했다.

지난 15일 가파도에서 봉사자들이 길고양이 급식소에 사료를 채워넣고 있다. 2022.1.31/뉴스1© News1

서귀포시청 주무관의 부탁으로 김지은씨가 봉사자들과 함께 한달에 3번씩 가파도에 들어가 떨어진 사료를 채워넣고 급식소 상태를 점검한다.

더 이상 먹이를 찾아나설 필요가 없어지자 주민들에게 길고양이는 '귀여운 이웃'이 됐다.

김씨는 "고양이 밥 문제가 해결되니 주민들 집에 들어가 난장판을 만들어놓는 일도 없어지고, 매주 봉사자들이 들어가 청소도 하니 고양이들에 대한 인식이 많이 개선됐다"며 "주민분들이 사료도 채워놔주시고, 고양이들이 어디가 아프진 않은지 주의깊게 살펴봐주시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고양이들의 건강상태가 나아지며 중성화 사업에도 시동이 걸렸다. 지난해 6월 수의사가 직접 가파도를 찾아 2박3일에 걸쳐 89마리를 수술해 방사했고, 9월에는 29마리가 수술을 마쳤다.

서귀포시청 관계자는 "올해 서귀포시 길고양이 중성화 사업 예산이 증액됐고, 중성화를 도와주는 동물병원도 3개소에서 5개소로 늘어 중성화 수술 실적이 더 좋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 봉사자 운임비 안 받는 선사·치료비 기부자들까지


가파도에 걸린 길고양이 인식 개선 관련 현수막.(김지은씨 제공) 2022.1.31/뉴스1© News1

가파도가 '고양이의 낙원'이 된 데는 여기저기서 뻗친 도움의 손길도 빼놓을 수 없다.

고양이 사료는 예비 사회적 기업인 동물의 집에서 한달에 240㎏씩 후원하고 있다. 사료는 서귀포시청이 바지선을 띄워 가파도까지 운반한다.

제주섬과 가파도를 잇는 여객선을 운영하는 선사 측도 발벗고 나섰다. 선사는 길고양이 문제 해결을 위해 가파도로 들어가는 활동가와 봉사자들의 뱃삯을 받지 않아 비용 부담을 크게 줄여줬다.

병들거나 크게 다친 길고양이 병원비를 후원하는 기부자들도 있다. 지난 15일 가파도에서 봉사자들이 데리고 나온 고양이의 병명은 폐수종, 치료비만 140만원이었다.

활동가 개인이 감당하기엔 큰 비용이었지만 곳곳에서 전해진 온정 덕에 고양이는 무사히 치료를 마치고 가파도로 돌아갈 수 있었다.

민간과 행정이 힘을 합친 인식 개선 캠페인도 현재진행형이다.

서귀포시청은 최근 동물 학대 금지와 관련한 리플릿 제작을 마쳐 조만간 가파도 주민들에 배포할 계획이다. 관련 현수막 역시 얼마 전 섬 곳곳에 걸렸다.

김씨와 봉사자들은 올해 내로 가파도 내 길고양이 관련 공공 일자리 사업이 시작될 수 있도록 힘쓰고 있다.

김씨는 "가파도 고양이 급식소 관리 등 관련 여러 업무를 공공근로로 전환하기 위해 도청과 논의하고 있다"며 "올해 후반기에는 공공일자리 사업이 시작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가파도 길고양이 프로젝트를 펼치고 있는 문현아 벨아벨 대표 역시 "서울에서는 길고양이 관련 노인일자리 사업이 추진되고 있고, 제주에서도 부속섬에 한해 시범사업 추진이 필요하다고 본다"며 "길고양이 프로젝트를 통해 길고양이 공공근로, 공공급식소 설치 등 주민과 함께하는 해결책을 찾아나가겠다"고 말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