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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스터·토끼 장례식 치러줘요…그런 직업도 있냐 묻지만"[이비슬의 B터뷰]
"햄스터·토끼 장례식 치러줘요…그런 직업도 있냐 묻지만"[이비슬의 B터뷰]
  • (서울=뉴스1) 이비슬 기자
  • 승인 2023.04.03 07: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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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소 차리고 화장까지"…반려동물 장례지도사의 하루
쓰레기 봉투에 사체 버리기도…"보호자 슬픔 위로하고파"
[편집자주] 모두가 열광하는 주인공보다는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오늘도 묵묵히 자신의 소명을 다하는 분들이 B터뷰의 주인공이다.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를 담아보려 한다.

서지연(22) 반려동물 장례지도사가 뉴스1과 인터뷰에 답하고 있다. 23.03.30/뉴스1 ⓒ 뉴스1 이비슬 기자


(서울=뉴스1) 이비슬 기자 = "햄스터, 토끼, 앵무새도 장례식을 치러요. 작은 아기들은 더 세심하게 염습(殮襲)합니다."

3년차 반려동물 장례지도사 서지연씨(22)는 무지개다리를 건너는 동물들의 안내자다. 사체를 닦고 수의를 입히고 화장 후 납골하는 절차까지. 숨을 거둔 반려동물은 그의 손끝에서 가족들과 작별한다.

그는 "장례식 내내 아기가 숨을 쉬는 건 아닌지, 살아있는 건 아닌지 확인해 달라며 현실을 부정하는 보호자도 많다"며 "반려동물 장례지도사는 보호자를 위로하고 한 가족의 장례를 맡아 이끄는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서 지도사는 6년 전 기르던 반려견이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반려동물 장례지도사라는 직업을 처음 알게 됐다. 장례식 당시 자신이 받았던 위로를 다른 보호자들에게도 전하고자 동물학과에 진학해 반려동물 장례지도사가 됐다.

서 지도사는 "주변에서 '그런 직업도 있느냐'는 말도 많이 듣는다"며 "장례식장에서도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느냐'고 말씀하시는 분이 간혹 있지만 장례를 치르고 나면 '덕분에 아기를 잘 보냈다'고 몇 달 후에도 감사 인사를 주신다"고 말했다.

반려인구 1500만 시대. 늘어나는 반려동물 수만큼이나 그들의 죽음은 자연스러운 일이 됐다.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보낸 이들에게 반려동물 장례식은 이별을 받아들이는 과정이자 어쩌면 가족을 위한 당연한 의례로 받아들여진다.

서 지도사는 "작은 동물을 안치할 때는 이불과 베개를 한지로 작게 만들고 전용 수의와 관도 사용한다"며 "아기가 생전처럼 예쁜 모습으로 마지막 인사를 나눌 수 있도록 털을 정리하고 분비물을 닦는 염습에 가장 많은 신경을 기울인다"고 말했다.

서지연(22) 반려동물 장례지도사가 반려동물용 관과 장례용품을 정돈하고 있다. 23.03.30/뉴스1 ⓒ 뉴스1 이비슬 기자


◇ 조문객 없는 1일장…내 가족의 '작은' 장례식

반려동물 장례식은 조문객이나 부의금 없이 가족들끼리만 1일장을 치른다. 동물마다 빈소도 따로 마련되며 염습과 화장 절차도 사람 못지않게 엄숙하다. 하루 최대 30마리가 서 지도사의 장례식장에서 가족들과 작별한다.

서 지도사는 "대부분 보호자가 살면서 처음 경험하는 일이다 보니 상실감에 펫로스 증후군(Pet Loss Syndrome)을 겪기도 한다"며 "저로 인해 보호자님이 위로를 받을 때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미국이나 독일, 일본에 등에서 반려동물 장례는 이미 보편적인 문화다. 반려동물 묘지나 동물 장의사, 펫로스 증후군 치료를 지원하는 센터 등 관련 산업이 더욱 전문화돼 있다.

서 지도사를 만난 날 장례가 진행 중인 한 추모실 앞에는 무지개다리를 건넌 고양이의 이름과 생전 모습을 촬영한 사진이 디지털 안내판에 나타나 있었다.

서 지도사는 "추모 시간에 충분히 인사를 나누지 못하면 보호자는 평생 후회하게 된다"며 "짧게는 1시간 전후, 길게는 5시간까지도 추모 시간을 갖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그가 장례 절차를 설명하는 내내 또래에게선 찾아보기 어려운 진지함이 느껴졌다. 차분한 어조와 막힘 없는 설명들은 모든 절차가 수년간 익숙하게 반복된 일임을 짐작하게 했다.

그는 "화장(火葬)할 때는 더 이상 만질 수도, 냄새를 맡을 수도 없기 때문에 보호자 중에는 오열하거나 쓰러져서 응급실에 실려 가는 분도 있다"며 "저도 겪어봤고 누구보다 보호자 마음을 잘 알기 때문에 마음이 더 아프지만 묵묵히 위로해 드린다. 동물에게는 속으로 '언니가 옆에 있으니 씩씩하게 견뎌내'라고 한다"고 말했다.

반려동물 장례지도사가 반려견 염습을 진행하는 모습. (유튜브 펫포레스트)


◇ 반려동물 화장 시설 '0' 지역…수화물 이송도

장례지도사는 신체·정서적 체력을 모두 요구하는 일이다. 섭씨 800도까지 치솟는 화장기에서 유골을 수습하다 보면 몸에 화상을 입는 경우도 다반사다. 뜨거운 열기에 바지가 눌어붙거나 착용한 넥타이가 그을러 끄트머리가 사라질 때도 많다.

서 지도사는 "수습한 뼈를 쇠절구와 쇠공이로 분골(粉骨)하다 보면 팔과 어깨가 많이 뭉친다"며 "하루 종일 서 있거나 무거운 동물을 옮겨야 할 때도 많아서 항상 운동화를 신고 일한다"고 말했다.

현행법상 동물사체는 생활폐기물로 분류돼 종량제 봉투에 넣어 배출해야 한다. 동물병원에 비용을 지불하고 위탁해 의료폐기물로 소각하거나 장례시설을 이용하는 방법도 선택할 수 있다. 세 가지 경우를 제외하고 야산에 묻거나 강이나 바다에 버리는 행위는 불법이다.

현재 법적으로 허가된 국내 동물장묘업체 68곳 중 화장 시설을 갖춘 업체는 61곳이다. 전국 사람 화장시설 수 62개와 맞먹는 수준이다. 그러나 국내 20곳 이상 대부분의 장묘업체가 경기도에 집중된 데다 서울·대구·대전· 제주도 등에는 화장시설이 단 한 곳도 없어 사체를 매립하는 불법행위가 공공연히 이뤄지고 있다.

서 지도사는 "제주도에 합법 화장시설이 없어 사체를 수화물로 부쳐 경기도까지 데리고 오셨던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서울시 용산구에 위치한 동물보호단체 '유기동물 행복찾는 사람들'가 보호 중인 유기묘 및 구조된 고양이들이 새로운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2022.2.2/뉴스1 ⓒ News1 장수영 기자


◇ '붉은 실' 인연의 끈…"우리 다음 생에 다시 만나길"

반려동물 장례지도사는 떠나간 동물뿐만 아니라 혼자 남은 보호자의 마음을 보듬는 일이다. 반려동물 장례지도사를 '마지막 소풍길의 안내자'라고 설명한 그는 업무의 어려움을 표현하는 것조차 보호자에게 실례가 될까 대화 내내 단어와 표현을 신중하게 골랐다.

서 지도사는 "처음엔 장례식을 치르다 저도 눈물이 났지만 제가 보호자에게 힘이 돼야 하기 때문에 감정적으로 동요할 수 없다"며 "매번 마음을 굳게 부여잡으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그에게 스물두 살이라는 나이는 좀처럼 어울리지 않는 숫자였다. 4년 차 김은수 장례지도사(31)는 "서지연 지도사는 슬픔에 빠져서 장례 접수가 불가능할 정도로 힘들어 하는 보호자를 리드하면서 대처에도 능숙하다"며 "가끔 서 지도사의 나이를 잊어버릴 정도"라고 말했다.

반려동물과 보호자는 인연을 맺는 동시에 '정해진 이별'을 받아들여야 한다. 대부분 동물의 수명이 인간보다 짧은 탓이다. 그럼에도 서 지도사는 반려동물이 떠난 뒤 애써 서둘러 장례를 치르지는 않아도 된다고 조언했다.

서 지도사는 "아기가 숨을 거둔 뒤부터 체온이 떨어지고 몸이 굳으면 보호자들이 당황한다"며 "곧바로 장례식을 치러 마지막 인사를 충분히 나누지 못하면 나중에 후회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여름엔 2~3일, 겨울엔 3~4일까지도 시간을 가져도 된다"고 말했다.

떠나는 반려동물 다리에 붉은 실을 묶어주면 다음 생에 다시 만난다는 속설이 있다. 장례식장에서 만난 서지연 지도사는 무지개다리를 건너는 반려동물과 보호자 사이를 이어주는 인연의 끈과도 같아보였다. 떠나보낸 반려동물들에게 어떤 말을 듣고 싶은지 묻는 말에도 붉은 실 같은 답이 돌아왔다.

"'좋은 기억만 가지고 떠나니까 너무 슬퍼하지 말라고 엄마, 아빠에게 전해주세요'라고 했을 것 같아요. '저희 엄마, 아빠 잘 부탁해요'라는 말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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