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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아니라 함께 사는 가족으로…이건희 회장이 바꾼 '애견문화'
음식 아니라 함께 사는 가족으로…이건희 회장이 바꾼 '애견문화'
  • (서울=뉴스1) 신건웅 기자
  • 승인 2023.09.20 13: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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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애견문화 수준 끌어올려…진돗개 순종 보존으로 세계서 인정받아
시각장애인 안내견 학교 설립 30주년 맞아…"문화적 업그레이드 공헌"
고(故) 이건희 선대회장이 설립한 삼성화재 안내견학교가 올해로 30년을 맞았다. (삼성전자 제공)


(서울=뉴스1) 신건웅 기자 = 고인이 된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의 '동물 사랑'은 각별했다. 진돗개 순종 보존에 직접 나서고, 30년 전 시각장애인 안내견학교를 세우기도 했다.

주변의 곱지 않은 시선에도 이건희 회장이 애견 사업을 밀고 나간 것은 무엇보다 개를 좋아하기도 했지만 △한국의 국가 이미지 개선 △현대인의 정서 순화 △생명의 소중함에 대한 인식 확산 △애견 문화 저변 확대를 통한 관련 산업 창출 등에도 도움이 된다는 철학과 혜안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건희 선대회장의 첫 애견 사업…진돗개 순종 보존

이건희 회장의 첫 애견 사업은 진돗개 순종을 보존하는 일이었다. 세계적으로 내로라하는 여러 종류의 개를 키워 보면서 진돗개를 세계무대에 내놓아도 전혀 손색이 없다고 판단했다.

특히 개의 중요한 특성인 희생과 충성에 있어 진돗개를 따를 만한 품종도 드물었다. 그러나 진돗개는 확실한 순종이 없다는 이유로 우수성이 세계에 잘 알려져 있지 않았고, 원산지 문제로 인정받지 못했다.

이에 이건희 회장은 순종 진돗개 보존에 직접 뛰어들었다. 1960년대 말 진도를 찾아 거의 멸종 단계였던 진돗개 30마리를 구입해 10여 년 노력 끝에 순종 한 쌍을 만들어 냈다. 이후 진돗개 300마리를 키우며 순종률을 80%까지 올려놓았다.

진돗개 품종 보종에 그치지 않고 진돗개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는 활동에 직접 나서기도 했다. 1979년 일본에서 열린 '세계견종종합전시대회'에 진돗개 암수 한 쌍을 직접 가져가서 선보였고, 이를 계기로 진돗개는 1982년 '세계견종협회'에 원산지를 등록할 수 있었다.

이건희 회장의 에세이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에는 당시 노력이 그대로 남겨져 있다. 그는 "당시 진돗개가 천연기념물 53호로 지정되어 있었지만 세계견종협회에서는 진돗개의 원산지가 한국임을 증명해 주지 않았다"며 "요구조건이 까다롭기도 했지만 확실한 순종(純種)이 없다는 이유에서였다"고 토로했다.

이어 "진도에 가서 사흘을 머물며 장터에도 가고 또 순종이 있다는 이 집 저 집을 찾아 30마리를 사 왔다. 사육사와 하루 종일 같이 연구하고, 외국의 전문가를 수소문해서 조언을 받아가며 순종을 만들어 내려고 애썼다"며 "처음 들여온 30마리가 150마리로 늘어날 때쯤 순종 한 쌍이 탄생했고, 마침내 79년 세계견종협회에 진돗개를 데리고 가서 한국이 원산지임을 등록시킬 수 있었다"고 말했다.

2005년에는 세계 최고 권위의 애견 협회인 영국 견종협회 켄넬클럽(Kennel Club)에 진돗개를 정식 품종으로 등록하는데 성공했다. 심사 과정이 까다롭기로 유명한 켄넬클럽은 진돗개를 정식 품종으로 등록하며 '품종 및 혈통 보호가 잘 돼 있는 견종'으로 평가했다. 이건희 회장의 진돗개 순종 보존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이건희 회장은 진돗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진 뒤 사업에서 손을 뗐지만, 진돗개는 현재 한국 고유의 견종으로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삼성전자 애견사업


◇국가 이미지 개선을 위한 애견 사업으로 확장

이건희 선대회장의 진돗개에 대한 관심이 애견 사업으로 확장된 것은 '88서울올림픽' 무렵이다.

올림픽을 앞두고 우리나라에 세계의 관심이 집중되면서 '보신탕' 문제로 연일 시끄러웠다. 올림픽 이후에도 유럽 언론은 한국을 '개를 잡아먹는 야만국'으로 소개하는 등 부정적인 인식이 확산됐다. 영국 동물보호협회가 대규모 항의시위를 계획하기도 할 정도였다.

이건희 회장은 국가 이미지가 실추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한국 상품 불매운동으로 연결되면 장기적으로 한국 경제에까지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봤다.

고민 끝에 이건희 회장은 영국 동물보호협회 회원들을 서울로 초청해 집에서 개를 기르는 모습을 직접 보여주고, 애완견 연구센터 등에 데리고 가 한국의 '애견 문화' 수준을 보여줬다. 이런 노력 덕분에 영국 동물보호협회의 시위는 취소됐고, 그 이후로는 더 이상 항의도 없었다.


19일 용인 삼성화재 안내견학교에서 열린 안내견학교 30주년 기념식에서 새롭게 활동을 시작하는 안내견들과 시각장애인 파트너, 관계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뒷줄 왼쪽부터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 윌리엄 손튼 세계안내견협회장, 홍원학 삼성화재 사장, 박태진 삼성화재안내견학교 교장. (삼성전자 제공) 2023.9.19/뉴스1


◇장애인을 포용하는 복지사회로…국내 최초 안내견학교 설립

이건희 회장은 1993년 신경영 선언을 기념해 국내 최초의 시각장애인 안내견 학교를 설립했다. '초일류 삼성'을 향한 변화의 첫 걸음을 사회공헌으로 시작한 셈이다.

그는 진정한 복지사회가 되려면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배려하고, 같은 사회의 일원으로 거리낌 없이 받아들이는 사회 구성원들의 따뜻한 마음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건희 회장은 "사회 복지를 완성하는 것은 인간의 마음이며 문화적 마인드"라며 "장애인복지재단이 많이 설립돼 편의를 도모한다고 해도 정작 장애인들이 거리에 나섰을 때 그들을 대하는 일반인들의 눈이 차갑다면 그런 사회를 두고 복지 사회라고 부를 수 없다"고 진단했다.

이에 "(인식과 관습을 바꾸는) 문화적 업그레이드야말로 사회 복지의 핵심이고, 그것이 기업이 사회에 되돌려줄 수 있는 가장 본질적인 재투자"라고 강조했다.

안내견 사업도 시각장애인들이 우리가 사는 세상으로 한 걸음 더 다가올 수 있도록 돕기 위한 사업이었다.

이건희 회장은 "안내견 사업이 우리 사회의 복지 마인드를 한 수준 높이는 데 기여하리라는 점은 분명하다"고 봤다.

삼성의 안내견 사업은 당시 세계적인 관심을 모았다. 비영리단체에 의해 모금으로 운영되고 있는 안내견 양성기관은 전 세계적으로 95개가 있었지만, 삼성과 같이 특정기업에서 독자적으로 이런 사업을 하는 경우는 없었기 때문이다.

삼성은 먼저 에버랜드 부지 내에 세계 최초로 안내견학교를 설립하고 양성해 1994년 안내견 '바다'를 분양한 이래 매년 12~15마리의 안내견을 양성해 시각장애인들에게 분양하고 있다.

이후 △인명구조견(1995년) △청각 도우미견(2002년) △흰개미 탐지견(2003년) 등 개를 통한 CSR 활동을 확대해 갔다.

이건희 회장은 '동물을 통한 사회공헌' 노력을 인정받아 2002년 세계안내견협회(IGDF)로부터 공로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건희 회장은 이외에도 1993년부터는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애견대회인 영국 크러프츠 도그쇼를 후원했고, 2013년 대회에는 진돗개 '체스니'가 최초로 출전해 입상을 하는 쾌거를 만들어 냈다.

삼성은 2008년에는 일본에 청각 도우미견 육성센터를 설립했고, 국내 애견 문화 저변 확대에 나서기도 했다. 특히 시각장애인들의 자립을 위한 토대 마련을 돕기 위해 안내견 양성과 함께 안내견에 대한 차별을 없애기 위한 노력도 병행했다.

이건희 회장의 노력은 애견 관련 한국의 국가 이미지를 개선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영국 왕실은 이건희 회장의 '동물 사랑'과 애견 문화 확산에 대한 공로를 인정해 개를 선물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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