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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의 개 수술에 케타민 썼다고 하면 그뿐"…동물병원 마약류 관리 '구멍'
"가상의 개 수술에 케타민 썼다고 하면 그뿐"…동물병원 마약류 관리 '구멍'
  • (서울=뉴스1) 최서윤 동물문화전문기자
  • 승인 2023.09.26 06: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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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의사 '집단 마약 사건' 연루에 수의계 '비상'
동물등록률 올리고 진료기록부 기재 제대로 해야
동물병원에서 진료 받는 대형견(사진 이미지투데이) ⓒ 뉴스1


(서울=뉴스1) 최서윤 동물문화전문기자 =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대형견 마취하고 수술하느라 케타민 썼다고 하면 확인이 어려워요."

최근 서울 용산구의 한 아파트에서 발생한 '경찰 추락사 집단 마약' 사건과 관련해 수의사가 마약 공급 혐의(마약류관리법 위반)를 받고 경찰에 입건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수의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수의계에서는 아직 수사 중인 사안으로 '개인의 일탈'이라고 선을 긋는 분위기다. 하지만 이를 계기로 현재 동물병원 진료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존재하지도 않는 동물에 투약했다고 해도 확인 안 돼

25일 수의계에 따르면 마약류관리법상 동물 진료에 종사하는 수의사는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와 마찬가지로 의료용 마약류 약품을 취급할 수 있다.

약품 취급 내역은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에 입력해야 한다. 진료기록부에는 마약 또는 향정신성의약품 품명과 수량을 적은 뒤 이를 직접 동물에게 투약 가능하다.

수의사들이 취급하는 의료용 마약류는 페노바르비탈, 졸라제팜, 틸레타민, 케타민 등이다. 동물 마취를 할 때 사용한다.

문제는 사람과 달리 오남용 처방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명확히 마련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특히 동물 진료시 주민등록번호와 같은 보호자의 개인정보를 받지 않다 보니 실제 마취를 위해 약품을 사용했는지 확인이 쉽지 않다는 점도 문제다.

이를 테면 사람의 경우 정해진 기준에 따라 약물의 용량을 맞춰서 의사가 처방하고 투약한다.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을 확인해 오남용이 의심되면 적발이 가능하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사람보다 몸무게가 덜 나가는 동물들은 약품을 소분해서 쓴다. 남은 약품은 보건소에 갖고 가서 폐기 처분해야 하는 등 과정이 번거로워 임의로 다 썼다고 신고해도 확인이 어렵다.

사람의 경우 병원을 처음 방문하면 주민번호와 주소, 연락처를 남긴다. 반면 동물병원은 주소와 연락처는 기재하지만 주민번호와 같은 개인정보를 별도로 받지 않는다. 거부하는 보호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나마 등록이 완료된 동물은 문제가 생기면 등록번호로 조회할 수 있다. 하지만 동물등록이 돼 있지 않은 길고양이, 유기견 등은 구조한 사람이 병원에 데려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서울지역 한 수의사는 "개인정보를 억지로 받기도 어렵고, 개인정보를 남기지 않는다는 이유로 치료를 거부하기도 힘들다"고 했다.

의료진이 가상의 동물을 만들어 치료를 위해 약품을 사용했다고 허위 신고를 해도 적발이 쉽지 않다.

앞서 대한수의사회는 의약품 오남용, 진료비 미지급 사례 등을 방지하고자 '진료기록부에 개인정보 기재를 의무사항으로 해야 한다'고 법제처에 요청한 바 있다. 하지만 '과도한 규제'라는 이유로 거절된 전례가 있다.

◇ 고양이 포함 등록 의무화 필요…사용 기록 명확하게

이 때문에 이번 마약 사건을 계기로 동물병원에서의 마약류 의약품 오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동물등록률을 올리고 수의사 처방관리시스템에 사용 기록을 명확히 기재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현재 동물보호법상 반려 목적으로 기르는 2개월령 이상의 개는 의무 등록 대상이다. 고양이 등록은 의무가 아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2021년 기준 반려견 약 277만 마리를 등록해 동물등록률은 53% 수준인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동물등록만 하고 변경 또는 폐사 신고는 하지 않는 등의 문제가 있고 개체수가 정확하지 않다는 비판도 있다.

특히 최근 고양이 양육인구가 늘어나면서 반려묘도 의무 등록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와 함께 몸무게가 다르고 체질이 다른 동물들의 특성상 약품을 처방할 때 표준화된 용량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고의적인 오남용이 아닌 용량 조절을 하지 못해 오남용되는 사례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동물이 마취 과정에서 쇼크사하면 법적 분쟁이 발생하기도 하기 때문에 약품을 어떻게 사용했는지 기록을 남기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수의계 관계자는 "대다수 수의사들은 동물 마취를 위해 약품을 사용하기 때문에 굳이 사람이 마약류를 투약하기 위해 얼마 안 되는 용량의 약품을 허위 기재하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라며 "연평균 8000명이 마약류를 셀프 처방하는 의사들에 비하면 수의사들의 마약류 오남용은 적을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이어 "동물병원에서는 사람에 대한 마약류 오남용보다 동물 진료를 하면서 오남용이 발생할 수 있다"며 "이번을 계기로 진료기록부에 개인정보 기재 등 시스템을 정비하고 보호자들도 적극적으로 동물등록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해피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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