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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몰랐던 동물원 희귀동물들의 '출생의 비밀'
우리는 몰랐던 동물원 희귀동물들의 '출생의 비밀'
  • (서울=뉴스1) 라이프팀
  • 승인 2017.01.04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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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소결핍돌연변이의 일종인 루시즘에 의해 흰색을 띠는 다마사슴. 원래는 꽃사슴과 같은 무늬를 가지고 있다. (사진 최혁준) © News1

(서울=뉴스1) 라이프팀 = 현재의 동물원이 '노아의 방주'에 못 미치는 마지막 요인으로는 희귀형질 선호에 따른 상업 목적의 선택교배를 들 수 있다.

동물원은 종종 자연에서 보기 힘든 외관을 가진 희귀한 개체를 전시하며 관람객들을 모으고 다른 시설과의 차별화를 도모한다. 가장 흔한 유형은 원래의 체색에서 벗어난 색을 띠고 있는 개체를 전시하는 것인데, 백색증(Albinism)이나 흑색증(Melanism)과 같은 색소관련 유전자 돌연변이가 나타난 개체들이 주로 그 대상이다.

전주동물원의 알비노 왈라비. (사진 최혁준) © News1

이런 희귀형질을 가진 개체들이 주는, 정상에서 벗어난 상태의 매력은 확실히 관람객들에게 효과적으로 작용하는 듯하다. 어느 동물원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정상 개체와 달리 희귀형질 개체들의 경우, 단순히 실제로 보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관람객의 오락적 욕구를 충족하는 장점이 있다. 따라서 많은 상업적 동물원들이 이런 개체들을 적극적으로 전시하고 번식시키려 하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희귀한 형질이 희귀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백색증 등의 희귀형질은 대개 열성형질인 경우가 많다. 우리는 중고등학교 생물 시간에 '유전형질의 우열 여부가 형질의 좋고 나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라고 배운다. 하지만 야생동물의 외형과 같이 생존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경우, 그 형질의 우열 여부가 곧 좋고 나쁨을 의미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에버랜드의 백호. 많은 백호들이 근친교배의 결과로 사진 속 개체와 같은 사시를 앓는다. 전 세계 수 백 마리의 백호는 1951년 인도에서 포획된 단 한 마리 수컷으로부터 유래했다. (사진 최혁준) © News1

가령 열성돌연변이유전자에 의해 흰색 털을 가지는 백호는 그늘이 가득하고 온통 갈색·녹색 계열로만 이루어진 열대 숲에 잘 섞여들지 못해 다른 동물들의 눈에 잘 띄기 마련이다. 때문에 백호는 은신과 매복에 있어 정상의 황색 호랑이에 비해 불리하며, 이것은 곧 사냥 성공률로 직결되어 생존과 번식에 악영향을 준다. 따라서 백호의 털 색깔 관련한 유전자는 호랑이의 생존에 있어 '나쁜 형질'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이런 나쁜 형질을 가진 개체는 야생에서 생존하여 후손을 남기기가 어렵다. 따라서 유전적 부동(Genetic drift) 현상이 일어나지 않는 한 그런 형질들은 유전자풀(gene pool)에서 소수가 되고, 자연히 발현 확률이 낮은 상태를 유지하며 희귀해진다. 백호를 야생에서 목격한 사례가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인 까닭이다.

청주동물원의 흰색 인도공작. (사진 최혁준) © News1

이러한 희귀열성형질개체의 전시는 처음엔 그저 운이 좋아 그런 개체를 입수하는 데에 성공한 소수의 동물원에서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개체를 전시하여 이익을 본 동물원은 이내 고민을 하게 된다. 지금 전시중인 이 개체가 죽어버리면 계속 이익을 볼 수 없을 테니 전시를 유지하려면 더 많은 개체가 필요하다. 하지만 계속 그런 개체를 구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고, 구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이런 개체들은 상품가치가 높아 값이 비싸다. 따라서 동물원은 당장 있는 개체의 번식에 골몰하게 된다.

하지만 번식이 된다 하더라도 열성형질은 발현확률이 낮은 특징 때문에 안정적인 숫자를 확보하기 위해선 많은 세대를 거듭해야 한다. 또한 그 과정에서는 확률 상 원치 않는 정상 개체가 훨씬 많이 태어날 수밖에 없어 이 또한 동물원으로서는 고민거리가 된다.

에버랜드의 백사자. (사진 최혁준) © News1

동물원은 돌파구를 찾아냈다. 하지만 이 돌파구 역시 열성유전의 특징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동물원은 열성끼리 교배하면 100% 열성이 태어나게 되는 것을 이용해 희귀열성형질개체끼리 짝을 지어 교배시켰다. 이런 방식으로 원하는 형질을 가진 동물을 대량으로 생산해내는 것은 우리가 이미 온갖 종류의 애완동물과 농장동물들에게 품종개량이라는 명목으로 지난 수 백 년 동안 자행해온 일이다. 동물원에 의해 야생동물에까지 품종개량이 이루어지게 되는 순간이다.

이렇게 야생이었다면 번식하지 못했을 개체들이 선택교배를 통해 자기들끼리 번식을 하며 숫자를 늘리게 되었다. 그러나 자연을 거스르는 시도는 항상 부작용을 일으키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부작용은 애꿎은 동물들에게 향했다.

에버랜드의 백호 한 쌍. 10마리가 넘는 현재의 숫자는 미국으로부터 기증받은 두 마리 개체에서부터 시작했다. (사진 최혁준) © News1

열성동형접합개체끼리의 지속적인 번식은 유전적 다양성을 감소시키고 유해대립유전자를 축적하는 결과를 낳아 유전질환을 유발했다. 또한 당장 있는 개체끼리 교배를 시키려다보니 자연히 근친교배로 이어지며 후대에 근교약세 현상을 초래했다.('동물원은 정말 노아의 방주일까' 2편 링크) 원래는 단순히 색을 바꾸는 정도였던 형질에 온갖 유해한 유전자들이 더해져 함께 유전되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동물원은 원하던 대로 많은 개체를 얻었지만, 동물들은 온갖 질병에 고통 받게 되었다.

이렇듯 탄생 이후 근래에 이르기까지 동물원은 종 보전 기관이라기보다는 종 보전을 저해하는 곳에 가까웠다. 물론 존재가치로 종 보전을 내세우기 시작한 이래 세계 각국의 동물원들이 보전 측면에서 이뤄내고 있는 크고 작은 성과가 쌓여가며 오늘날의 동물원이 오락시설과 종 보전 기관 사이의 과도기적 상황에 놓여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기간이 아직 오래되지 않았고, 전체 동물원 중 그러한 노력이라도 보이는 곳이 소수에 불과하며, 그 노력이 보전에 미치는 실질적 기여도를 따져보면 여전히 갈 길이 멀다.

대전아쿠아리움의 알비노 샴악어. (사진 최혁준) © News1

아무리 종 보전을 위해 노력한다고 해도 어디까지나 동물원은 전시 및 관람을 일차적 기능으로 하는 시설이고, 이로 인해 어느 정도의 상업성은 항상 안고 갈 수밖에 없다. 따라서 동물원에는 앞선 편에서부터 살펴본 교잡, 근친교배 및 상업적 선택교배 등의 우려가 항시 존재할 것이다.

서울동물원 종보전센터의 여우. 서울동물원은 국립공원관리공단 종복원기술원의 소백산 여우 복원 프로그램에 여우를 번식시켜 보내는 것으로 참여하였다. (사진 최혁준) © News1

스스로를 '노아의 방주'로 칭하는 축배를 들기에는 아직 시기가 많이 이르다. 최전선에서 진짜 노아의 방주 역할을 하는 1차적 전문기관들은 따로 있는지라 앞으로도 종 보전에서 동물원이 할 수 있는 역할은 지금처럼 '진짜 방주'들을 돕는 보조적 기관에 머물 것이라고 여겨진다. 동물원이 계속 동물원인 이상 가질 수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점이라고 생각한다.

각자의 위치에서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는, 교과서적이지만 그만큼 중요한 기본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동물원은 정말 노아의 방주일까' 끝.

최혁준(공주대 특수동물학과 2년, '국내 동물원 평가 보고서' 저자)

▶'동물원은 정말 노아의 방주인가' 1편 바로가기

▶'동물원은 정말 노아의 방주인가' 2편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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