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9 04:43 (월)
설화는 죽음의 문턱에서 나의 손을 잡았다
설화는 죽음의 문턱에서 나의 손을 잡았다
  • (서울=뉴스1) 한준우 동물행동심리전문가
  • 승인 2017.04.16 09: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폐부종으로 힘들어 하던 설화. © News1

(서울=뉴스1) 한준우 동물행동심리전문가 = 시도 때도 없이 짖는 문제로 보호자와 함께 필자를 찾아왔던 '설화'(13·사모예드)는 사실 10년 동안 필자와 함께 살았다. 교육을 받은 지 두 달 만에 문제행동을 완전히 고쳤지만, 보호자의 개인적인 사정으로 필자와 함께 지내게 됐다. 보호자가 결혼과 직장 문제로 설화를 관리할 수 없어 필자에게 맡긴 것이다. 물론 보호자는 설화를 주말마다 만났다. 주말엔 설화를 집에 데리고 갔다가 월요일 출근길에 다시 맡기는 방식이었다.

교육이 잘 된 설화는 필자와 함께 생활하면서 동물 매개치료 봉사활동을 하기도 하고, 문제행동으로 필자를 찾아온 문제견들의 모델견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렇게 10년을 함께 보냈다.

그런데 지난해 설화 보호자에게서 연락이 왔다. 이제 설화를 데리고 가 함께 생활하고 싶다고 했다. 설화는 보호자의 품으로 돌아갔다.

설화가 떠난 지 9개월 후, 보호자로부터 갑자기 문자가 왔다. '선생님, 예전에 설화가 앓던 병명이 뭐였죠?'라는 내용의 문자였다. 다급하게 전화를 해보니 보호자는 "설화가 숨을 잘 쉬지 못하고 잘 움직이지도 못한다"며 울먹였다.

설화는 한 방송 프로그램에 '천재견'으로 소개된 산들이의 모델견이었다. 사진은 방송 촬영을 하던 설화(왼쪽)와 산들이의 모습. © News1

사실 설화는 7년 전 폐부종에 걸려 죽다 살아난 적이 있다. 당시 필자와 시골에서 생활하던 터라 치료를 할 수 없어 도시로 나가 치료를 했다. 대형견이라 입원이 안 돼 필자가 직접 링거를 놓고 약을 먹이기도 했다. 숨 쉬기를 어려워 해 휴대용 산소통을 사다가 끼워주기도 했고, 일이 있어 밖에 나갈 땐 혹시나 무슨 일이 생길까 싶어 주사를 맞고 있는 설화를 자동차 뒷자석에 태워 다니기도 했다.

하지만 설화의 상태는 호전되지 않았다. 대소변도 방 안에 엎드린 채로 봤다. 며칠이 지났을까. 설화의 눈은 풀려 있었다. 자고 일어나면 설화의 눈이 감겨 있을 것만 같았다. 이별의 순간이 왔다는 걸 직감하고 설화에게 마지막 말을 남겼다.

"설화야, 난 널 정말 사랑해. 내가 너에게 해줄 수 있는 건 다 했어. 의사선생님도 최선을 다 하셨고. 그런데 설화 너의 의지가 부족한 것 같아 보여. 설화가 나와 같이 살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면 사료도 먹고, 물도 먹어줬으면 좋겠어."

이야기를 끝낸 뒤 불을 껐다. 10여 분이 지났을까. 쩝쩝대는 소리가 들려 허겁지겁 일어나 불을 다시 켰다. 그런데 정말 기적 같은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일어나지 못했던 설화가 물을 먹고 있었다. 필자는 황급히 북어를 끓여 사료와 섞어 설화에게 먹였다. 설화는 한 컵 정도의 양을 먹어치웠다. 그리고 다음날, 설화는 지금까지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활기차게 생활했다. 그렇게 지금까지 살아온 것이다.

축 처진 채로 링거를 맞고 있는 설화의 모습. © News1

설화의 그런 모습을 직접 경험한 필자는 보호자에게 "폐부종이 재발한 것 같다"며 황급히 병원을 안내했다. 다행히도 설화는 이번에도 폐부종을 잘 이겨냈다. 다시 예전처럼 활기차고 착한 반려견으로 돌아왔다.

건강한 설화의 모습. © News1

사실 7년 전 설화를 간호할 때 필자에게 수의사는 이런 말을 했다. "반려견이 아플 때 보호자가 할 일은 30%, 수의사가 할 일도 30%입니다. 나머지 40%는 반려견의 의지에 달린 겁니다."

아픈 반려견에게 살고자 하는 의지는 그만큼 중요하다. 설화도 그걸 깨닫는 순간 아픔을 훌훌 털어내고 예전의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 힘든 과정을 꿋꿋하게 이겨낸 설화에게 다시 한 번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문제견'에서 '모델견'으로 거듭난 설화> 끝.

▶1편 "아파트에 사는데 강아지가 너무 짖어 큰일이에요" 바로 보기

한준우 알파카월드 동물행동심리연구센터 지도교수.© News1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